평론/영화

<왕가위> 동사서독 리덕스 (Ashes Of Time Redux, 2008) - 스텝프린팅의 활용

Panic Jo 2020. 9. 5. 17:11

 <동사서독 리덕스 줄거리>-광활한 황무지의 주막에 은거하는 구양봉(장국영)은 암살을 사주하는 중개인이다. 젊은 시절 사랑하는 여인(장만옥)과의 사랑에 실패한 그는 냉소적인 사람으로 변했다. <동사서독>은 그의 주막을 차례로 찾아드는 사랑에 괴로운 모룡연(임청하), 눈이 멀어가는 자객 맹무살수(양조위), 살인 청부를 하고 싶지만 돈이 없는 한 처녀(양채니), 협객으로 이름을 떨치고 싶은 가난한 무사 홍칠(장학우)의 이야기를 차례로 펼쳐 보인다.

 

 

 

 <동사서독 리덕스>-동사서독은 인기 있는 무협소설이 원작이다. <사조영웅전>이라는 원작을 가지고 만들었다. 이때 당시 무협물이 인기가 있어서 무협소설 중 최고로 유명한 <사조영웅전>을 택해서 큰 도전을 하였다. 왕가위는 무협영화를 만들 기회가 이번뿐이라면 무협 장르에 대해 자신이 아는 걸 다 투자해야지 하면서 <무협 백과사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동사서독’은 기존의 무협영화의 관습을 따르지 않으니 원작 소설을 모르면 줄거리를 따라가기가 힘들다. 그리고 둘째, 인물들의 너무 비슷하다. (베니스영화제 때 서양인들은 아예 인물들을 구분하지 못하고, 여자배우들은 전부 장만옥으로 생각했다.) 구조 면에서 ‘리덕스’버전이 처음 버전과 다른 점은 일부 시퀀스의 재배치 정도뿐이다. 그 외는 거의 똑같다. 큰 차이점은 사운드와 음악. 중경삼림을 개봉하고 두 달 뒤 동사서독을 개봉하기로 해서 대부분의 음향효과가 미리 녹음을 따놓은 것처럼 진부하게 들렸다. 15년 만에 2008년 다시 편집하고 오케스트라 (거장 요요마-첼로 주제곡)를 데리고 음악 전체를 다시 녹음했다. 다시 만든 버전을 동사서독 리덕스라고 발표하였다. 

 

 

 

 도입부에 새로운 장면들이 살짝(정말 살짝) 추가됐는데, 물결치는 사막 모래 장면이나, 고속촬영으로 시간의 변화를 보여주기 위해 변화하는 태양의 이미지를 CG로 보여주는 장면이 추가됐다. 그리고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할 때마다 백로, 입춘 등 계절에 어울리는 절기의 소제목이 첨가되면서 순환의 의미를 덧붙였다. 그렇게 이야기는 구양봉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그 자신의 이야기로 마무리되기까지 경칩으로 시작해 경칩으로 끝난다. ‘시간의 재’라고 하는 영어 제목에 충실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마지막은 춤을 추는 듯한 구양봉의 화려한 액션으로 마무리된다. 다소 어정쩡한 느낌으로 마무리됐던 원본의 의미를 명확하게 했다. <동사서독 리덕스>는 결국 <동사서독>이 버림받은 무사 장국영의 이야기였다는 것을 증명한다. 

 

 

 

 

 남녀를 오가는 이중인격의 임청하나 싸움을 즐기는 장학우처럼, 그 많은 등장인물들을, 감독님은 용케 다 다룹니다. 그뿐 아니라 장국영이 맡은 냉소적인 청부살인업자 구양봉의 시선으로 그들 모습을 그려낸다. 대부분의 경우 구양봉과 황약사는 ‘서독’과 ‘동사’로 지칭된다. 둘 다 비극적인 인물이지만 극과 극을 달린다. 서독은 고비사막에서 크고 나중에 형의 아내가 될 여자를 사랑하는 비극을 안고 있는 인물이다. 동사는 얼음 같고 늘 혼자고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벚꽃 가득한 머나먼 섬에서 홀로 유배 생활을 하는 남자이다. 
대담한 각색을 하였다. 원작에서는 둘 다 가학적이고 왕가위가 그려 낸 캐릭터와는 다른 성격. 그래서 원작자 김용이 더 이상 판권을 판매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음력상의 사계절 구조를 통해 우리는 네 커플의 감정적으로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알 수 있다.

  • 구양봉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로부터 거절당했다고 생각한다.
  • 황약사도 같은 여자한테 거절당했다.
  • 눈먼 관객은 아내가 자신을 배신했기 때문에 자살한다.
  • 귀족 여인인 공주는 자신이 사랑한 남자가 자신을 거절했기 때문에 미쳐버린다. 

 

 

 

이들의 관계는 평면적인 원이 아니라 갈수록 아래로 내려가는 나선이 된다. 나중에는 최고의 검객인 동시에 좋은 남편이 

되기 위해 아내를 거절하지만 나중에는 최고의 검객인 동시에 좋은 남편이 되는 게 더 낫다는 걸 깨닫는다.

마지막에 구양봉이 자신의 연인에게 거절당했다고 믿었던 기억이 실은 자신의 환상일 뿐이었단 사실을 깨닫는 순간에야 마침내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진다.

 

 

 

 

홍콩 세트장과는 판이하게 다른 환경. 사막은 색깔이 항상 바뀐다. 아침, 오후, 저녁 비 올때 그 전부가 늘 다르다. 카메라를 설치하려고 몇시간씩 사막에서 보냈다. 어딜 가든 항상 같은 곳이었다. 그 사실을 영화에서 구양봉의 대사로 직접 쓰기도 했다. “이 둔덕만 넘어가면 모든 게 완전히 달라질 것 같아도 막상 거기 도달하면 결국 똑같다.”라는 대사다. 배우들을 데려가는 과정은 끔찍했다. 홍콩에서 위린 시까지 가는 직항 노선들이 있지만 그 뒤부터 악몽이었다. 지연도 잦았고 환경이 원시적이어서 스타들 8명을 떼로 다녔다. 스타들이 지금 와서는 흥미진진하고 즐기지만, 그때 당시에는 아니었다. 

 

 무협 장르는 사실주의가 아니기 때문에 오프닝 장면과 임청하 출연 장면에는 와이어 액션과 폭발을 잔뜩 넣었다. 영화에서 중요 싸움 2번 나온다. ‘스텝프린팅’기법을 써서 장학우의 칼날이 아주 빠르다는 설정이어서 관객이 속도를 느낄 수 있도록 찍었다. 또 다른 장면에선 홍금보에게 일당백으로 맞붙는 전형적인 일본 사무라이 격투신을 주문했다. 양조위가 맡은 눈 먼 검객은 육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너무 지친 상태라서 슬로우모션을 찍어서 그의 검이 얼마나 무거워졌는지,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관객들의 말초 감각을 자극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이상을 담고 싶어헀다. 

 

 

 

 

 홍콩에서는 인기가 없었고, 중국에서는 인기가 많았다. 중국의 교육 체계는 홍콩만큼 서구화돼 있지 않았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중국 관객은 중국 전통예술과 문학에 더 연결돼 있는 편이다. 그들 중 많은 수가 영화 속 전체 맥락을 볼 줄 알았다. 자기들이 봤던 영화와 너무 달라서 이런 해석을 신선해했다. 

 

서구에서는 동사서독 왕가위의 필모그래피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 하지만 중국인들에게는 특히 좋아하는 영화이다.

첫 제작을 맡고 중국 본토에서 제작한 첫 영화이다. 1994년 가을은 가장 눈부신 계절이었다. 중경삼림 해외 개봉에 맞춘 인터뷰를 진행하고, 아내는 임신 7개월에 동사서독 후반 작업을 하고 고통을 감내한 보람이 있었던 멋진 강행군의 시기였다고 한다.